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와 G드라이브 데이터 소실… 총체적 시스템 붕괴의 민낯
2025년 9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국정자원) 대전 본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 디지털 정부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를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배터리 과열, 소방 점검 거부, 충전 지침 위반 등으로 발생한 이 화재는 결국 수많은 공공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공무원 전용 클라우드인 G드라이브의 8년치 데이터를 통째로 소실시키며 공공 행정의 기반을 흔들었습니다.
배터리 충전 지침 무시… 충전율 80% 상태서 작업
화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은 배터리 관리 지침의 명백한 위반입니다. 산업안전 기준에 따르면 리튬이온 배터리를 작업 전 30% 이하로 방전시켜야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국정자원은 충전율 80% 상태에서 분리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재용 정보자원관리원장은 국회에서 이 사실을 인정하며 “적절하지 않았다”고 시인했습니다.
소방청 점검 거부… 보안 이유로 화재 예방 차단
2024년, 소방청은 국정자원 대전 본원 전산실에 대한 특별 안전 점검을 요청했으나, ‘보안상의 이유’로 이를 거부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채현일 의원은 “경보음이 울린다는 이유로 소방 점검을 배제한 것은 명백한 사전 대응 실패”라고 비판했습니다.
G드라이브 8년치 자료 전소… 복구 불가능
이번 화재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시스템은 공무원 전용 클라우드 서비스인 ‘G드라이브’입니다. 정부가 2017년부터 19만여 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운영해온 이 서비스는 업무 자료, 정책 문서 등을 저장·공유하는 핵심 플랫폼이었습니다.
그러나 G드라이브 시스템은 전산실과 함께 전소됐고, 같은 공간에 보관된 백업 서버까지 불타면서 복구가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행정안전부는 “남은 데이터가 있는지 조사 중이지만, 현재로선 복구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하루 단위 백업은 61.7%… 월 1회 백업 시스템도 다수
현재 국정자원에서 운영 중인 전체 647개 공공 시스템 중 하루 단위로 백업되는 시스템은 352개(약 61.7%)에 불과합니다. 그 외 248개는 한 달에 한 번만 백업하거나, 아예 재해복구 시스템이 없는 상태입니다. 주요 시스템인 G드라이브는 하루 백업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고, 심지어 백업 자체도 같은 위치에 물리적으로 보관된 구조적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공무원들 “8년치 업무 자료 증발… 대혼란”
G드라이브에만 자료를 저장해온 일부 부처와 공무원들은 8년치 업무 자료가 통째로 증발하면서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인사혁신처는 “인사 정보는 별도 시스템에 저장 중이나, 대부분 정책 자료는 G드라이브에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로 인해 정책 결정의 연속성이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과거 자료 복원이 불가능해져 행정 공백과 오류 가능성이 대폭 상승하고 있습니다.
재발 방지 대책은? 액티브 DR 도입 시급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민간 기업에서 사용하는 ‘액티브-액티브 재해 복구 시스템(DR)’ 도입이 시급하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시스템은 두 개의 센터가 실시간으로 데이터 동기화를 해 하나가 마비되더라도 서비스 연속성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정부의 DR 시스템 구축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예산과 조직 간 이견으로 지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디지털 정부, 안전 체계부터 재설계해야
이번 국정자원 화재와 G드라이브 소실 사건은 정부의 디지털 행정 체계가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시스템 관리가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여실히 드러낸 사고였습니다. 단순 사고가 아니라 시스템 구조, 관리 철학, 조직 문화 전반의 문제가 드러났으며, 공공 데이터의 신뢰성과 지속성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습니다.
디지털 혁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 안전입니다. 국민이 믿고 쓸 수 있는 공공 시스템, 지금부터라도 다시 설계해야 할 때입니다.